알만한 사람들은 신윤경 주임이 신현서 과장의 딸이라는 걸 이미 안다. “아빠가 보령발전본부에 있는 제 동기들한테 ‘나 누구 안 닮았어?’라고 물어보곤 하셨대요. 기왕 이렇게 된 거 사보를 통해서 제대로 부녀(父女) 사이인 걸 티 내보려고 합니다.” 딸 신윤경 주임이 작정하고 ‘세상에, 맛남’ 코너 문을 두드렸다. 둘째 딸이 오직 아빠를 위해 마련한 깜짝 도시락 이벤트, 기대하시라 두-둥!
세상에, 맛남
글. 최선주 사진. 안지섭
보령에 있는 요리학원. 신윤경 주임이 긴장한 얼굴로 들어섰다. “요리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신청했으니까 열심히 만들어 보겠습니다!” 할 수 있는 요리라고는 라면과 볶음밥 정도이지만, 아빠가 드실 도시락이니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그녀. 입사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신입이라 동기, 선배들과의 식사 자리는 많았는데 정작
같은 보령에 있는 아빠와 밥 먹는 시간이 줄었단다. 그래서 서운해하고 있을 아빠에게 선물과 재미를 전하고 싶어 도시락을 만들기로 마음 먹었다.
열심히 요리 강사의 설명을 듣다 보니 걱정이 되는지 “제가 이걸 다 기억할 수 있겠죠?”라며 앓는 소리를 한다. “걱정하지 마세요. ‘야채쌈밥’은 초보가 도전하기에 딱 좋은 요리랍니다.” 강사의 말에 위안을 얻은 신윤경 주임이 드디어 조리대 앞에 섰다. 처음에는 “어? 이거 먼저 하는 게 맞나요?”라며 갈팡질팡했지만,
이내 한 단계, 한 단계의 과정을 침착하게 이어 나갔다.
양념에 넣을 참치 기름을 빼준다.
양념의 재료가 될 양파와 파를 다진다.
간장, 소금, 다진 야채를 넣고 양념을 섞는다.
양념을 골고루 볶아준다.
야채에 밥을 넣고 양념을 올린 후 쌈을 싸면 끝!
“아빠는 웬만한 건 가리지 않고 다 잘 드세요. 제 도시락도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네요.” 양념장을 만들고, 볶고, 쌈야채까지 데치니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야무지게 야채에 밥과 양념을 넣고 예쁘게 말면 메인 요리는 끝이다.
초반의 걱정과는 달리 칼질도 야무지게 해내더니, 쌈야채까지 보기 좋게 만든 신윤경 주임은 본인 스스로도 뿌듯한지 “오! 잘 말아졌는데요? 귀여워요!”라며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뚝딱 쌈밥을 완성한 그녀는 조금 아쉬운 도시락에 샌드위치를 만들고 과일까지 곁들이며 그럴싸한 ‘신家네 둘째 딸표 3단 도시락’을 완성했다.
혹시 눈치를 챘을까? 이동하는 사이 아빠에게 전화가 두 통이나 왔다. “응, 거의 다 왔어~ 도착하면 연락할게!” 나름 노련한 연기로 아빠를 안심시키고 도착한 보령발전본부 발전동. 하지만 아빠가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딸이 온다는 소식에 맛있는 커피를 사주려고 사내 커피숍으로 먼저 가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부녀
상봉.
“내가 만들었어. 이거 주려고 온 거야!” 딸의 한마디에 아빠는 반가운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이걸 네가 만들었다고? 웬일이래~!” 꽤 그럴싸한 도시락의 형태에 신현서 과장은 놀라워하며 쌈밥 하나를 입에 넣었다. “요리를 못하는 줄 알았는데, 잘하네! 맛있어~!”
아빠의 칭찬이 내심 즐거운지, 신윤경 주임도 쌈밥 하나를 집어 먹는다. 그리곤 맛있게 드시는 아빠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자주 못 만나요. 지난 주말에도 하루 늦게 서울 본가에 갔더니, 먼저 보령에 내려갔더라고요. 그래서 한 3주 만에 보는 것 같아요.” 그렇기에 신현서 과장은 꽤 오랜만에 딸이 먼저 얼굴 보자고 연락이 와서 내심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저녁 먹자고 하길래, 맛있는 거 사주나 싶었는데 도시락은 생각도 못했네요.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그리고 바람 하나를 전했다. 늘 예쁘고, 기특한 딸이지만 가족과 떨어져 둘만 보령에 있는 만큼 아빠를 조금 더 잘 챙겨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아빠의 말에 신윤경 주임은 쿨하게 오케이를 했다. “저는 아빠를 엊그제 본 것 같은데, 그렇게나 시간이 지났는지 몰랐어요. 아빠가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저도 정말 기분이 좋네요. 오늘처럼 요리를 해드리지는 못하겠지만, 보령에 있는 만큼은 아빠와 자주 데이트할 시간을 만들어야겠어요.” 공개적으로 한 딸의 약속에 아빠는
연신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생각지도 못한 딸의 깜짝 도시락 이벤트는 이렇게 끝이 났지만, 아빠와 딸의 추억 만들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어릴 적 캠핑을 떠나거나 해외여행을 갔던 것처럼 아빠와 딸은 오늘을 계기로 더욱 재미있는 일들을 함께 해보자고 다짐했다. 찐 중부가족이 만들어 갈 재미있는 나날들에 <중부가족>도 다시 한번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도시락 배달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