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색이라도 하고 올걸 그랬나?” 희끗한 머리를 계속 쓸어 넘기며 카메라 앞에 수줍은 미소를 보이는 정진향 어르신. 일할 수 있어서 하루하루가 행복하다는 정진향 어르신은 여생(餘生)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인생을 즐기는 제2의 인생(人生)을 살고 있다. 바로 이곳 서천에서.
지역 어르신을 위한 시니어 일자리 창출사업
한국중부발전은 2017년부터 ‘시니어 일자리 창출사업’을 진행해왔다. 올해 4월에는 한국노인인력개발원과 함께 ‘지역 시니어 일자리 창출 사업’ 협약을 맺고 발전소 주변지역에 특산물을 활용한 창업을 지원하고, 지역 어르신들이 좋은 일자리를 통해 사회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2019년에 문을 연 ‘서래야’는 서해안 특산물 김을 활용한 ‘김대감 스틱자반’을 개발하며 해외 시장에 활발한 수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기업으로, 서천지역 어르신 10명이 근무 중이다.
내 이름은 정진향, 올해 나이 예순네 살입니다. 태어난 곳은 충청도 광천이지만, 세 살 때 서울로 이사해 쭉 살았으니 서울 사람이나 진배없지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들, 딸 두 남매를 낳아 출가시키고 남편과 둘이 잘 살았죠.
그런데 나전칠기 기술자였던 남편이 인테리어 사업을 무리하게 진행하면서 무릎 관절에 무리가 생겼고, 결국 인공관절을 삽입하는 수술까지 받았어요. 남편이 아프면서부터 저도 일을 했는데, 주로 학교에서 급식을 담당했지요. 저는 일이 많이 힘들지는 않았는데, 주로 집에만 있던 남편이 답답하다고 귀촌을 원하더라고요. 시골로 내려가는 게 맞을지, 내려간다면 어디로 가야할지, 또 언제 가야할지 고민만 계속했죠. 모든 것이 다 있는 서울 살이를 포기하고 시골로 내려간다는 게 선뜻 결심이 서지 않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그러더라고요.
아빠 소원대로 해줬으면 좋겠다고요. 아들이 보기에 아빠가 안타까웠나봐요. 결국 남편의 고향인 서천으로 귀촌지를 정하고 살 집을 4개월 동안 지었어요. 남편이 집 짓는 기술이 있다 보니 저랑 둘이서 직접 지었죠. 그렇게 남편이 꿈에 그리던 서천으로 2016년에 귀촌했어요.
남편은 서천에서의 삶을 만족해했어요. 텃밭에서 농사도 짓고, 나흘에 한 번씩 서천납골당에서 관리원으로 일도 하고, 양봉도 하고요. 심지어 마을 청년회 활동도요. 하지만 저는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아는 이 하나 없고, 주변에 갈만한 곳도 없으니 외롭고 우울증까지 오더라고요. 버스도 하루에 네 대뿐이니 어디 갈수도 없는 노릇이었죠. 귀촌해서 1년 동안은 남편과 매일 싸웠던 것 같아요. 그렇게 우울증으로 약까지 먹으면서 정말 힘든 1년을 보냈답니다.
겨우겨우 서천 살이를 이어가던 중에 우연한 계기에 김 공장인 서래야에서 일할 지역 어르신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어요. 제가 워낙 활동적인 성격이다 보니 뭐라도 하고 싶어서 바로 지원을 했고, 다행히 취직하게 됐죠.
서래야에 취직하고 나서부터 제 삶이 달라졌어요. 아침에 일어나 갈 곳이 있고, 일할 수 있다는 게 행복했어요. 어른들 하는 말이 하나 틀리지 않더라고요. 하루 8시간 정도 김 패키지 포장일을 하는데요. 많이 힘들지도 않고 딱 좋아요. 일한지 3년 정도 되었는데 일하면서부터 우울증 약도 끊고 잠도 잘 자요.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이제 행복하게 잘지내고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우울증이 없어지면서 부부 사이도 좋아졌어요. 남편이 매일 출퇴근도 시켜주고요. 집안 살림도 함께하고 있답니다. 남편과 집 주변 산에 오르기도 하고 둘이서 여행도 많이 다녀요. 전국에 안 가본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여행을 자주 갑니다. 얼마 전에는 영광 법성포에 다녀왔고요, 내일 모레 진도에 가기로 했어요. 마음이 편해서인지 남편도 다리 아프다는 말을 안해요. 행복이 뭐 별건가요? 일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고 텃밭도 가꾸고 등산도 하고 여행도 갈 수 있으니 그게 행복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