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의 자식 사랑이 담긴 『양아록』과 『천인천자문』. 이 책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정성으로 자식들을 키워야 하는지를 겸허하게 생각해보게 한다. 돈으로 거의 모든 것이 해결되는 요즘 시대에 『양아록』과 『천인천자문』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그래서 크고도 무겁다.
조선 시대 『양아록(養兒錄)』의 한 대목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육아일기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양아록』을 쓴 이가 아이의 엄마가 아니라 이문건(李文楗)이라는 한 노년 남성이었다는 것이다.
묵재 이문건은 조선 중기 정암 조광조의 문인으로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경상도 성주에서 가족과 함께 오랫동안 귀양살이를 했다. 그곳에서 그의 나이 58세 되던 해인 1551년 외아들 이온(李熅)이 숙길을 낳았다. 자손이 귀했던 집안의 경사였던 지라 묵재는 이때부터 시문 형식의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양아록』이었던 것이다.
처음 일기가 시작되는 1551년부터 숙길이 어엿한 청년이 되어 일기를 마무리하게 되는 1566년까지 그는 손자에 대한 섬세하고도 따뜻한 일기를 남겼는데, 장장 16년간의 기록이었던 셈이다. 이 일기에는 ‘기어 다니기’, ‘걸음마 연습’, ‘이 갈기’, ‘말 배우기’ 등 손자의 성장 발달 과정과 함께 ‘글자 깨우치기’, ‘한문 독해 교육’ 등 교육내용, ‘말로 타이르기’, ‘손 들고 있기’, ‘종아리 때리기’ 등 잘못에 대한 다양한 훈계 방법 등도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손자를 훌륭한 사람으로 기르고자 했던 조선중기 한 할아버지의 지극한 손자 사랑이 담긴 기록이 바로 이『양아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조선 시대 아이의 양육과 관련하여 이 『양아록』 만큼이나 감동을 주는 책이 있다. 바로 『천인천자문(千人千字文)』이다. 원래 『천자문』은 중국 양나라 사람 주흥사가 처음 지은이래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한자를 익히는 기본서로 널리 사랑받아 온 책으로 ‘天地玄黃(천지현황)’으로 시작하여 ‘焉哉乎也(언재호야)’로 끝나는 천 개의 글자로 자연의 구성 원리, 사람이 응당 지켜야 될 윤리와 도리, 자연의 섭리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 『천자문』 앞에 ‘천인(千人)’을 붙인 『천인천자문(千人千字文)』은 무엇일까? 천인(千人)이 쓴 천자문? 그렇다. 『천인천자문』은 말 그대로 천 명이 한 글자씩 써서 만든 천자문이다. 왜 이런 특이한 형식의 책을 만들었던 것일까?
『천인천자문』에는 천자문 각 글자마다 한글로 뜻과 음을 아래에 썼으며, 그 오른쪽에 글씨를 써 준 이의 이름과 도장 날인을 받았다.조선 시대 귀한 아이가 태어난 어느 양반 집으로 시간 여행을 해 보자. 집안은 온통 잔치 분위기. 보석 같은 아이가 태어났으니 온 집안사람들은 한결같이 이 아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서 집안의 대를 잇고, 과거를 통해 입신출세하기를 소원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갓 태어난 아이의 아버지(혹은 할아버지)는 이러한 소망을 담아 이 아이의 돌상에 올릴 『천자문』 한 권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런데 보통의 『천자문』 정도로는 이들의 정성을 채우기에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그리하여 아버지(혹은 할아버지)는 아들(혹은 손자)을 위해 직접 명망가나 친지, 지인 등 천 명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천자문의 순서에 따라 한 글자씩 친필을 받아 책을 완성해 나갔다. 천인(千人)의 덕망과 지혜가 아들 혹은 손자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즉 지혜를 구하는 행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천 명의 사람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글을 구했기 때문에 이 책은 『걸자천자문(乞字千字文)』으로도 불린다. ‘글자를 구걸하여 만든 천자문’이라는 뜻이다. 이 책 하나를 만들 때 들인 발품이나 비용 그리고 정성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자식과 손자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 지극한 정성, 사랑의 힘이 아니고서는 만들어질 수 없는 책이 『천인천자문』이었던 것이다. 한 아이의 지혜와 행운을 위해 천 명의 사람이 한마음으로 정성을 모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위대하다.
“한 마을에 불행한 사람이 있으면 마을 전체의 책임이고, 아이하나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우리 역사에서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의 의미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천인천자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