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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청량음료, 무더위를 쫓다
퇴근길 인문학

제호탕부터 생맥산까지
조선 시대 청량음료 무더위를 쫓다

이열치열(以熱治熱). 우리 선조들은 무더운 여름을 잘 나기 위해 삼계탕 등
다양한 보양식을 챙겨 먹으며 열을 열로써 다스렸다. 음식이 아닌 더위를 이겨낼 음료는 없었을까?
우리 역사 속에서 찾은 그 옛날 청량음료.

글 아이콘 글. 박건호 『컬렉터,역사를 수집하다』 저자 사진 아이콘 사진제공.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퇴근길 인문학02 김홍도의 <점심>. 무더운 여름날 일꾼들이 새참을 먹는 광경

갈증이 풀리고 정신이 맑아지는 ‘제호탕’

먼저 제호탕(醍瑚湯)이라는 왕실 전용 여름 청량음료가 있는데, 이는 매실로 만든 것이다. 매실은 흔히 음식물의 독, 피 속의 독, 물의 독 등 3가지 독을 없앨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식중독이나 배탈과 같은 병은 다 이런 독 때문에 생기는 것인데 매실에 들어있는 피크린산이라는 성분이 이 독성물질을 분해하여 없앤다는 것이다. 또한 술을 마신 다음 날 매실액을 물에 타서 마시면 해독기능을 가진 간을 활성화시켜 숙취해소에 좋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매실의 이런 해독 기능을 알았던지 제호탕이라는 매실 음료를 만들어 마셨다.

귀한 유자로 만든 ‘유자장’

다음 소개할 음료는 유자로 만든 유자장(柚子漿)이라는 음료이다. 유자는 조선 시대 매우 귀한 과일이었다. 조선 후기 순조 때의 진상물품에 든 유자가 전라, 경상 각 도마다 일 년에 한 차례씩 3백 개에 불과했던 사실을 봐도 알 수 있다. 잘 알려진 조선 시대 박인로의 시조에도 이런 사정이 잘 드러나 있다.

盤中(반중) 早紅(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柚子(유자)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슬새 글로 설워하노라.

박인로가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마침 홍시 대접을 받고는 주인 몰래 품어다가 부모님께 드리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이미 돌아가셔서 품어가도 반길 분이 없어서 서럽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박인로는 ‘(비록) 유자 아니라도’라고 했다. 이를 통해 유자는 양반들에게도 매우 귀한 과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유자로 만든 음료 유자장 역시 매우 귀했음을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유자장은 유자의 껍질과 속을 저며 꿀이나 설탕에 재워서 우려 만든 유자청(柚子淸)을 물에 타서 마시는 것으로 입안에 남는 감이 매우 상쾌하고도 향기로워 여름철에 마시기 좋은 건강음료이다.

원기를 보충할 때는 역시 ‘생맥산’

마지막으로 소개할 음료는 여름에 숭늉처럼 먹는 오미자 음료 생맥산(生脈散)이다. 생맥산은 기가 허약해 저절로 땀이 나고 열로 인해 체액이 소모되어 갈증이 날 때 먹는 음료로 폐에 좋다. 기가 약하거나 노인들에게 좋은 음료이다.

이 생맥산은 영조 임금과 관련하여 재미난 일화가 있다.

영조는 한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금주령을 내린 인물이었다. 조선시대 많은 왕들이 금주령을 내린 적이 있으나 그것은 가뭄과 흉년이 들었을 때 한시적으로 실시한 것이었던데 비해 영조의 경우는 거의 집권 기간 내내 금주령을 실시했다. 모든 술을 금지하고 위반자는 엄벌한다는 살벌한 명령이었다. 심지어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 가장 중시된 의례인 제사에도 술 대신 감주(甘酒; 단술)를 쓰도록 강요할 정도였다. 영조는 조선에서 아예 술을 없애겠다고 단언했다. 술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술을 주조, 판매하고 음주하는 자들을 단속하기 위해 형조와 한성부의 인원을 뽑아서 ‘금란방(禁亂房)’이라는 특별수사대를 창설하기도 했다. 이러니 금주령을 어긴 자들에 대한 처벌도 매우 엄할 수밖에 없었는데, 병마절도사 윤구연을 금주령을 어겼다 하여 처형한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렇다 보니 금주령에 대한 불만은 영조 치세기 내내 제기되었다. 그런데 영조 자신은 술을 매우 좋아하는 임금이었다. 신하들은 영조에게 세간의 여론에 빗대 영조가 술을 몰래 마시는 것이 아니냐고 따지기도 했다. 금주령을 내린 임금으로서 대놓고 술을 마실 수 없으니 주전자에 생맥산 대신 오미자술을 넣고 먹었을 수도 있겠다. 색깔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 영조 12년 4월 24일의 기록이다. 조명겸이라는 신하가 말한다.

“항간에 전해지는 말을 들으니, 성상께서 술을 끊을 수 없다고들 합니다. 허실을 알 수는 없지만 조심하고 염려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조명겸도 은근히 영조에게 다른 사람들은 술을 못 마시게 하고, 임금 혼자만 술을 마시는 게 아니냐고 돌려서 공격한 것이다. 이에 대한 영조의 대답은 전과 같았다.

“내가 목이 마를 때에 간혹 오미자차를 마시는데, 남들이 간혹 술인 줄 의심해서이다.”

추상같은 금주령을 내린 영조가 마신 것은 생맥산이었을까? 술이었을까?

퇴근길 인문학03 조선 시대 21대 왕인 영조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금주령을 시행한 군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