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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아라리오뮤지엄
카멜레존

버려진 건물에서 예술의 꽃이 피어나다
제주 아라리오 뮤지엄

‘여기가 미술관이 맞나?’ 아라리오뮤지엄 동문모텔Ⅰ을 들어선 순간 든 생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모텔의 욕실이나 창문, 벽지와 낡은 문 등 미술관 곳곳이 1970년대 지어진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탑동시네마, 동문모텔Ⅰ, 동문모텔Ⅱ, 이름도 미술관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런데 옛 건물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곳에서 세계적인 작품을 만나다니! 푸른 바다와 멋진 풍경만 생각하고 온 제주였건만, 아라리오뮤지엄에서의 시간이 오래도록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글 아이콘글. 박영화 사진 아이콘사진. 고인순

공간의 혁신을 이루다, 카멜레존

우리나라 최초의 화력발전소인 서울화력발전소가 세계 최초로 발전 시설 지하화를 결정함에 따라 지상에는 시민공원이자 예술공간인 문화창작발전소가 조성되는 공간혁신을 이뤄냈다. 제주 아라리오뮤지엄도 이전 공간의 특성을 간직한 채 다른 용도로 탈바꿈해 공간을 혁신한 사례로, 제주도의 대표적인 카멜레존이다. 카멜레존은 카멜레온(Chameleon)과 공간을 의미하는 존(Zone)을 합성한 말로, 기존 용도에서 벗어나 상황에 맞춰 새롭게 변신한 것을 일컫는다.

카멜레존 02

옛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그래서 더 특별한 미술관

제주도 제주시 탑동 한복판. 빌딩숲 사이로 강렬한 빨간색의 건물이 시선을 끈다.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다. 제주의 첫 복합 상영관이었던 탑동시네마는 대형 프렌차이즈 영화관들이 들어서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고, 결국 2005년에 문을 닫게 됐다. 오래도록 방치되던 옛 영화관 건물은 국내 최고의 미술품 컬렉터로 꼽히는 ㈜아라리오 김창일 회장이 미술관으로 지으면서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 것이다.

아라리오뮤지엄의 특징은 옛 건물의 흔적을 남겨두어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점이다. 탑동시네마의 외관은 컬러풀한 색으로 갈아입었지만 내부는 전시 관람에 필요한 최소한의 개보수만을 진행했다. 허물다만 콘크리트 기둥과 철골 구조물이 보이도록 내부를 꾸몄고, 영사관 등 옛 영화관의 흔적도 그대로 남겨두었다. ‘시네마’라는 옛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기까지 했다. 이는 ‘보존과 창조’라는 아라리오뮤지엄의 콘셉트를 그대로 살린 것으로, 미술관을 제주도민과 함께해 온 시간을 오롯이 간직한 의미 있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김창일 회장의 의지가 담겨 있다.

세계적인 작품을 만나기 위해 해외로 갈 필요 없다

버려진 건물에 예술적 가치를 더해 근사한 미술관으로 만들었다는 사실도 놀라운데, 탑동시네마의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전시된 작품들을 둘러보면 또다시 놀랄 수밖에 없다. 김창일 회장이 40년간 수집해온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건물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일본 작가 코헤이 나와의 <사슴가족>이 관람객을 맞는다. 아기 사슴 세 마리와 아빠, 엄마 사슴의 몸에서 뿜어 나오는 영롱한 빛에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중국 작가인 장환의 <영웅 No.2>는 규모에서부터 관람객을 압도한다. 거대한 인체형상의 작품으로 소 100마리의 가죽을 이용해서 만들어냈다고 한다. 길이 20m가 넘는 배에 녹슨 주전자와 냄비, 고철덩어리들을 빼곡하게 실은 인도 작가 수보드 굽타의 <배가 싣고 있는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도 시선을 끈다. 독일 현대미술계의 거장 지그마르 폴케와 미국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의 작품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데, 그 사실만으로도 아라리오뮤지엄을 찾을 이유가 충분해 보인다.

탑동시네마에는 Ci Kim이라는 작가명으로 활동 중인 김창일 회장의 작품도 전시 중인데, 일상에서 버려지는 것들을 활용한 대형 회화, 조각, 설치, 드로잉 등 작품 3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카멜레존 02 나무, 흙, 철, 청동 등 전통적인 재료를 자유자재로 다룬 천재 조각가, 구본주 작가.
카멜레존 04 90년대 한국 구상조각의 전성기를 끌어낸 구본주 작가의 작품. 카멜레존 05 빨간색 외관이 인상적인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
카멜레존 06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에서 씨 킴(Ci Kim)의 열한 번째 개인전이 전시 중이다.

새롭게 부는 문화적 활기 동문모텔Ⅰ & 동문모텔Ⅱ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에서 차로 5분 정도 이동하면 또 다른 분위기의 아라리오뮤지엄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동문모텔Ⅰ과 동문모텔Ⅱ다. 제주 구도심의 최대 번화가였던 동문재래시장과 산지천 사이에 자리하였던 모텔들을 인수해 미술관으로 개축한 것이다.

동문모텔Ⅰ은 객실 공간을 그대로 살려 예술적 감성을 더해 완성한 미술관으로 개성이 강한 곳이다. 일본 작가 아오노 후미아키는 모텔이었을 당시 건물이 품고 있던 이야기를 작품의 소재로 삼아 작품을 완성했다. 이곳의 낡고 오래된 집기와 가구를 활용해 작가의 상상을 덧붙여 아트워크를 만들어낸 것. 전쟁과 현대 자본주의를 비판한 제이크&디노스 채프만 형제 작품도 전시 중이다.

동문모텔Ⅱ에서는 불의의 사고로 37세 나이에 세상을 떠난 비운의 조각가 구본주 작가의 작품이 전시 중이다. 나무와 흙, 철 등 전통적인 소재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주로 고된 노동과 스트레스로 얼룩진 남성의 애잔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특히 <배대리의 여백>이라는 작품은 하나의 통나무를 깎아낸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각목을 켜켜이 이어붙인 뒤 조각을 하는 작가 특유의 기법으로 완성했다.

아라리오뮤지엄 동문모텔Ⅰ과 동문모텔Ⅱ는 산지천의 옛 기억이 묻어있는 옛 건물의 흔적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예술 작품들을 전시함으로써 새로운 문화 공간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단지 하나의 미술관이 생겨난 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산지천 일대에 문화적 활기를 불어넣어 지역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제주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제주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것도 좋지만 예술이 깃든 공간에 머무르며 세계적인 작품을 감상해보면 어떨까.

·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
주소: 제주도 제주시 탑동로 14
전화: 064-720-8201

· 아라리오뮤지엄 동문모텔Ⅰ
주소: 제주도 제주시 산지로 37-5
전화: 064-720-8202

· 아라리오뮤지엄 동문모텔Ⅱ
주소: 제주도 제주시 산지로 23
전화: 064-720-8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