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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유교 만화책<삼강행실도>
퇴근길 인문학

조선 시대 유교 만화책
<삼강행실도>

<삼강행실도>는 500년 조선 역사에서 가장 많이 편찬된 책으로 유명하다. 국가적 사업으로 출판된 이 책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충신, 효자, 열녀의 미담 사례를 글과 그림으로 정리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왜 만들었을까? 또 그렇게 많이 편찬된 이유는 무엇일까?

글 아이콘 글. 박건호 <컬렉터,역사를 수집하다> 저자 사진 아이콘 사진제공. 국립중앙박물관
퇴근길 인문학 02 <삼강행실도>는 백성들에게 효도를 포함하여 유교 윤리를 가르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삼강행실도>, 왜 만들어졌을까?

세종 즉위 10년이 되는 1428년 10월 3일, 경연 자리에 마주 앉은 왕과 대신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논의하고 있었다. 얼마 전 진주 사람 김화(金禾)가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 때문이었다. 유교 국가인 조선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사건이었다. 조선은 아내가 남편을, 또 노비가 주인을 죽이는 것과 함께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것을 강상죄(綱常罪)라 하여 매우 엄하게 다스렸다. 세종은 자신의 덕이 없음을 자책하면서 효제(孝悌)를 돈독히 하고, 풍속을 후하게 이끌 방책들을 물었다. 이에 판부사 변계량(卞季良)은 효행을 다룬 책을 널리 반포하여 백성들이 이를 항상 읽고 외우게 하면 풍속이 교화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세종은 직제학 설순(偰循)에게 명하기를,

“이제 세상 풍속이 박악(薄惡)하여 심지어는 자식이 자식 노릇을 하지 않는 자도 있으니, 효행록을 간행하여 이로써 어리석은 백성들을 깨우쳐 주고자 한다. 이것은 비록 폐단을 구제하는 급무가 아니지만 실로 교화하는 데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니…. 옛날 효행이 특이한 자들을 모두 수집하여 한 책을 편찬해 이루도록 하되, 집현전에서 이를 주관하라”고 하였다.

<삼강행실도>는 백성들에게 효도를 포함하여 유교 윤리를 가르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질서 확립을 위해서는 엄중한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충신, 효자, 열녀 중 모범이 될 만한 인물 각각 110명 총 330명의 이야기를 뽑아 정리한 것이다. 특히 취지가 글자를 모르는 백성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매편마다 그림을 넣어 사실의 내용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책 이름에 그림 ‘도(圖)’자가 들어가 <삼강행실도>가 된 것이다. 일종의 유교 만화책인 셈이다. 1432년 완성된 이 책은 1434년 주자소에서 인쇄를 마친 후 전국에 배포되었고 세종 이후에도 성종, 중종, 선조, 정조 대에 걸쳐 꾸준히 간행되었다.

김화 살부 사건과 <훈민정음> 창제

백성들에게 유교 윤리를 가르치겠다는 취지로 불가피하게 선택한 수단이 ‘그림’이었는데, 이는 지나치게 번거롭다는 단점이 있었다. 조선의 지배층은 초기부터 피지배층인 백성과의 의사소통의 도구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김화 살부 사건을 계기로 유교 윤리를 가르치기 위한 방편으로 그림책까지 만들었지만 한계는 분명했다. 이런 문제의식의 귀결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세종 때의 <훈민정음>이었다. <훈민정음>은 <삼강행실도>가 편찬된 지 약 10년 뒤인 1443년 창제되고 그 3년 후인 1446년 반포되었다.

<훈민정음> 즉 한글을 만든 목적은 ‘訓民正音(훈민정음)’이라는 표현 속에 이미 들어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훈민’이란 말은 무슨 뜻일까? 백성들에게 유교 윤리를 가르친다는 뜻이다. 백성들에게 유교 윤리를 가르치는 수단으로 새로운 글자를 만들었다는 것이니 백성들에게 유교 윤리를 가르치는 것이 당시로서는 중요한 과제였음을 알 수 있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주요 이유가 이러했으므로 세종은 한글이 반포되기도 전인 1444년 2월 <삼강행실도>를 한글로 번역해 출간하고자 했다. <훈민정음>을 만든 취지로 볼 때 매우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많은 신하의 반대로 결실을 보지 못하였다가 9대 임금인 성종 때에 이르러서 <삼강행실도>의 한글 언해본이 처음 나오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김화 살부 사건은 직접적으로는 <삼강행실도>의 편찬에, 간접적으로는 <훈민정음> 창제에도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비록 김화 살부 사건 때문에 <훈민정음>이 창제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 되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 사건이 피지배층에 대한 도덕적 교화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해 <훈민정음> 창제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것이다.

퇴근길 인문학 03 <훈민정음>은 <삼강행실도>가 편찬된 지 약 10년 뒤인 1443년 창제되고 그 3년 후인 1446년 반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