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잎이 노랗게 한껏 무르익었다. 가을바람에 잎이 춤추듯 흔들린다. 가을의 정취가 깊고도 그윽하다. 어디론가 여행이라도 떠날 기색으로 뚝 하고 떨어진 은행잎, 반질반질한 툇마루에 내려앉아 따사로운 가을볕에 잠든다. 추사 김정희 고택이다.
모름지기 집은 그 집 주인을 닮는 법.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아파트가 그럴진대 한 땀 한 땀 혼을 불어넣듯 정성 들여 지은 한옥이야 더 말해 무엇 하랴. 가을 하늘색을 닮은 청색 주련이 주인장의 성품을 빼닮은 것은 그 글을 쓴 이가 명필 추사인 까닭일까. 사랑채를 지나 안채에 들면 낯선 객을 반가이 맞아주는 것은 주인장이 아닌 집이 먼저다.
추사 김정희(1786~1856년)는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났다. 선생이 나고 자란 고택과 그가 잠든 무덤이 있는 이곳을 중심으로 여러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전해온다. 추사고택이 있는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서울에서 출발하면 2시간 정도 걸린다.
가을날 추사고택의 풍경은 한층 고즈넉하다. 솟을대문을 에워싸듯 서 있는 노란 은행나무와 추색에 취한 목련, 목단, 감나무가 울긋불긋 고택을 물들였다. 솟을대문 왼쪽에 큰 키를 자랑하듯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서 있고, 그 옆에 우물이 있다. 추사가 태어나기 전 충청 지방에 극심한 가뭄이 들어 우물까지 말랐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물이 차올랐는데 그때, 추사가 태어났다. 지세와 지운을 보는 풍수가들은 추사고택이 자리한 땅을 명당이라 한다. 고택 뒤에 야트막한 용산이 있고 앞에는 평야가 펼쳐지고 더 먼 곳에는 삽교호가 아산만을 지나 바다와 맞닿았다.
‘ㄱ’자 모양의 사랑채가 한눈에 담긴다. 일정한 크기의 각진 주춧돌 위에 사각기둥이 정갈하게 놓였다. 그 모습이 마치 예를 갖춰 손님을 맞이하는 선비를 닮았다. 품격과 기품이 이처럼 남다른 것은 궁궐을 짓던 목수의 뛰어난 솜씨 덕분이리라.
고요는 적막을 부른다고 했던가? 주인 없는 집은 적막하기 마련이지만 추사고택은 그렇지 않다. 가을 하늘보다 더 푸른 글씨가 주련을 장식하고 있다. 글씨는 한결같이 강직하다. 모두 추사의 글이다.
추사는 이 집에서 태어났지만 오래 살지 못했다. 8살에 백부 김노영의 양자로 들어간 까닭이다. 그렇지만 추사는 친부모가 있는 이곳에 자주 내려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사랑채 큰방은 추사가 머물던 곳으로 병풍과 보료, 서탁과 궤짝 등이 놓여 있다. 추사 김정희는 조선 시대 최고의 서예가로 손꼽히지만 사실상 그는 금석학과 실학에 능통한 학자였다. 관직에 진출한 추사가 병조판서에까지 올랐지만 이내 시련이 닥쳤다. 55세에 윤상도 옥사에 연루돼 9년간 제주도에 유배됐고, 65세에는 진종조예론(眞宗弔禮論)의 배후자로 지목돼 다시 2년간 함경도 북창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아픔 없이 피는 꽃이 있을까. 그가 겪었던 모든 시련과 아픔은 예술적 자양분이 되어 그만의 글씨인 추사체라는 결실을 거두었다. 집안 곳곳에 걸려 있는 글씨와 세한도 같은 그림들은 결국 아픔을 딛고 피어난 꽃인 셈이다.
안채와 사랑채는 사대부 가옥에 꼭 있어야 하는 내외담 없이 바로 연결된다. 처음부터 없었던 게 아니라 개·보수를 하면서 사라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채는 전형적인 충청지역의 가옥인 ‘ㅁ’자 형태다. 6칸 대청에 안방·건넌방·부엌·광이 살갑게 옹기종기 붙어 있다. 대청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면 하늘이 ‘ㅁ’자 틀 안에 갇힌다. 그림자도 그렇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다간 옛 여인의 삶 역시 ‘ㅁ’자 공간 안에서 옥신각신했을 것이다. 옛 여인들의 삶이 한눈에 그려진다. ‘시월드’의 원조는 ‘ㅁ’자에서 출발한 게 아닐까. 고택에서 가장 높은 곳에는 사당채인 영당이 자리한다. 추사의 아들 김상우가 세운 곳으로 사당채에 걸어 놓은 현판 ‘추사영실(秋史影室)’은 추사의 벗 권돈의 글씨이고, 초상화는 제자 이현철이 그렸다. 그림 속 추사의 얼굴은 따뜻한 표정이다.
고택과 가까운 곳에 추사의 증조부 김한신의 묘와 화순옹주 홍문(열녀문), 백송이 자리한다. 백송은 나무껍질이 하얀색을 띠는 소나무다. 추사가 25세 때 청나라 연경에서 씨앗을 가지고 와서 이곳에 심었다. 두 가지는 괴사했고 한 가지만 독야청청 하늘을 향한다. 비록 볼품없는 모습으로 서 있지만, 주변에 분신 같은 백송 묘목들이 여럿 자라고 있어 훗날을 기약해 볼 일이다.
고택 뒤 용산 자락으로 발길을 들인다. 그곳에 추사가 잠든 무덤이 있다. 추사의 묘는 소담스럽게 꾸며놓아 그의 성품을 말해주듯 정갈하다. 인생이라는 거친 바다를 항해하며 숱한 비바람을 맞았을 추사 김정희. 비록 영욕이 교차하는 고난의 삶을 살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추사체라는 역작을 남김으로써 후대에까지 기리 빛나는 위인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추사고택은 그의 삶을 들여다보는 여행이다.
주소: 충청북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추사고택로 261
전화: 예산군 관광안내소 041-339-8930, 추사고택 041-339-8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