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동에서 회현역까지. 서울역을 중심으로 길게 뻗은 서울로7017에는 추운 겨울임에도 산책하는 사람이 많다. 그 옛날 고가도로가 안전성을 문제로 철거 되었다면, 지금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동차들이 빽빽하게 자리하던 고가도로에서 걷는 거리로 더 유명해진 서울로7017. 그 거리는 지금, 서울의 중심에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도시, 사람과 자연을 잇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화력발전소인 서울화력발전소가 세계 최초로 발전 시설 지하화를 결정함에 따라 지상에는 시민공원이자 예술공간인 문화창작발전소가 조성되는 공간 혁신을 이뤄낸 대표적인 카멜레존이다. 카멜레존은 카멜레온(Chameleon)과 공간을 의미하는 존(Zone)을 합성한 말로, 기존 용도에서 벗어나 상황에 맞춰 새롭게 변신한 것을 일컫는다.
서울역을 오고 갈 때마다 보이는 서울로 7017. 다양한 나무들과 꽃들이 가득한 이곳이 그 옛날에 차가 지나던 도로였다는걸 의외로 모르는 사람이 많다. 걷기 좋은 거리로 사계절 내내 도시인들의 쉼터가 되어주는 서울로7017의 역사는 꽤 깊다.
역사는 192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성역이 준공된 후 서울역과 철도는 회현동과 중림동, 청파동 지역을 서로 가로막는 벽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1970년, 벽처럼 자리하던 이 공간에 산업 근대화의 상징물로 서울역 고가도로가 지어지기 시작했고 1970년 3월, 퇴계로에서 동자동 구간의 서울역 고가도로가 개통되었다. 그리고 2년 후 1975년. 마침내 만리재에서 퇴계로까지의 구간을 포함한 서울역 고가도로는 완공을 알리며 서울의 중심에 자리하게 된다. 이렇게 탄생한 서울역 고가도로는, 지방 도시에서 기차를 타고 상경한 사람들이 서울역에서 대면하게 되는 서울의 첫 얼굴이자, 상징적 구조물의 역할을 했다.
1960년대 서울의 첫 얼굴로 손님들을 맞이하던 고가도로는 1990년대 흉물 소리를 듣게 된다. 2000년대 들어서는 지속적으로 교량 안전성 문제가 수면위로 올라왔고, 이 문제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안전성 평가 D등급이라는 결과로 조기 철거 검토 대상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지만, 조기철거를 하기에 서울역 고가도로가 갖는 가치는 분명했다. 여느 고가도로처럼 지상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했고, 주요 역사적인 사건(IMF 경제위기, 민주화 추진 요구 학생집회 등)을 보고, 담고, 그 사건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맞는 장소이기도 했으니까. 그뿐이었겠는가. 서울역 고가도로는 서울역 철로시설들로 인해 단절된 도심 및 남대문시장 일대와 서울역 서쪽 지역 일대를 잇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공장과 시장을 이으며 산업적으로 다리 역할을 하던 서울역 고가도로는 역사적으로 보존되어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
서울로7017로 바뀌기 전, 고가도로의 옛 모습 지금은 개방을 잠시 막아 둔 옛 서울역사 폐쇄램프의 모습.서울 시민들의 삶을 잇던 서울역 고가도로. 철거되었다면 시민들의 희로애락까지 사라져버리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에 서울시는 특별한 결정을 하게 된다. ‘지우고 새로 짓는’ 전면 철거 작업을 넘어 ‘고쳐 쓰고 다시 쓰는’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서울역 고가도로는 철거 위기까지 갔으나 차량 중심의 공간에서 사람 중심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이름하여 서울로7017. ‘1970년에 만들어져 2017년 다시 태어났다’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만리동에서부터 회현역까지 약 1.5km 정도 되는 이 거리는 지금 산책로이자, 쉼터, 전시, 공연 등 다양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콘크리트로 된 바닥이 인상적인데, 고가도로였던 원형 그대로의 느낌을 살리고 주변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며 식재된 식물의 색상을 두드러지게 보이게 하기 위한 디자인 콘셉트라고. 실제로 서울로7017의 디자인 콘셉트는 디자이너(MVRDV, Winy Mass)와 국내 여러 전문가가 논의를 걸쳐 결정했다고 한다. 역사를 품은 공간이니만큼, 새로운 모습으로 시민들의 곁으로 오기 위한 서울시의 고민이 엿보인다.
서울로7017는 서울역 고가 도로를 ‘차량길’에서 ‘사람길’로 재생하고, 단절된 서울역 일대를 통합 재생하여 지역 활성화와 도심 활력 확산에 기여하는 사람 중심 도시재생 프로젝트다. 서울로7017 로고가 새겨진 녹화도시벽(Green City Wall).서울로7017은 초록의 다양한 식물들을 볼 수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인공지반에서 생육이 가능한 서울·중부지역 수종 50과 287종을 선정해 식물 ‘과’의 이름에 따라 ‘가나다’순으로 배치했다. 아쉽게도 찾았던 날이 안개가 자욱했고 때가 겨울이었던지라 초록의 식물들은 만나볼 수 없었다.
여느 식물원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다양한 수종을 보유하고 있고, 도심 한복판에서 다양한 꽃과 나무를 볼 수 있는 공간이니, 이곳의 초록빛을 보고 싶다면 봄, 여름, 가을에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이 밖에도 서울로7017은 다양한 모습으로 시민들과 함께하고 있다. 거리 중간 중간에 관광안내시설, 전시홍보시설, 공연문화시설, 체험놀이시설이 마련되어 있는데 걷다가 잠시 머물러서 구경하기 좋다. 목련무대, 윤슬에서는 버스킹과 같은 공연도 이루어졌는데 아무래도 시기가 시기인지라 공연은 잠시 쉬어가는 중이다. 서울로 가게에서는 서울로를 담은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판매하고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렇게 중간마다 마련된 시설들은 작은 공간이지만 사람들에게는 볼거리가 되기 충분하다.
사람길로 다시 활기를 띠게 된 지 어언 4년. 서울로7017의 주인은 자동차가 아닌 사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누군가에게는 출근길로, 여행자들에게는 의미 있는 여행길로, 시민들에게는 삶의 길로…. 저마다 서울로7017을 걷는 이유는 다르겠지만, 사람과 세상을 잇는 이 공간에서만큼은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길 바란다.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