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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녀의 부엌
카멜레존

제주 종달리 포구에 해녀의 부엌 있수꽈?

제주 해녀의 부엌

20년 전, 생선을 경매하던 활선어 종달리 위판장. 세월이 흘러 어획량이 줄어들면서 창고로 변해버린 이 공간에 청년 예술인들이 뜻을 모아 국내 최초 해녀 극장식 레스토랑을 탄생시켰다. 종달리 해녀들 의 억척스러운 삶과 애환, 손맛까지 담아낸 ‘해녀의 부엌’이다.

글 아이콘글. 박영화 사진 아이콘사진. 유지연

공간의 혁신을 이루다, 카멜레존

카멜레존은 카멜레온(Chameleon)과 공간을 의미하는 존(Zone)을 합성한 말로, 기존 용도에서 벗어나 상황에 맞춰 새롭게 변신한 것을 일컫는다. 대표적인 카멜레존인 우리나라 최초의 화력발전소 ‘서울화력발전소’가 세계 최초로 발전 시설 지하화를 결정함에 따라 지상에는 시민공원이자 예술공간인 문화창작발전소가 조성되는 공간 혁신을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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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위판장이었던 곳

카멜레존 04 해녀의 부엌으로 바뀌기 전 창고 모습

구좌읍 종달리 아름다운 바닷가. 해녀의 부엌은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종달리 포구 부두 위에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다. 회색 건물이 너무나 소박해 공연장인지 모르고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 했다. 창고 문 앞까지 다가가니 그제야 보이는 ‘해녀의 부엌’이라고 써진 입간판. 다행히 제대로 찾았다.

해녀의 부엌은 ‘국내 최초 해녀 극장식 레스토랑’이라는 독특하고 특별한 수식어가 붙는다. 당연히 제주도청에서 추진해 만들어진 곳으로 생각했는데 사실은 이렇다. 제주 해녀 집안에서 태어나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김하원 대표가 해녀들이 힘겹게 잡은 해산물이 마땅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극복할 방법을 찾고자 창업을 하게 되었단다. 그렇게 2019년 3월, 오랜 세월 방치된 창고는 해녀 공연과 밥상이 차려지는 ‘해녀의 부엌’으로 재탄생했다.

해녀의 삶과 애환이 담긴 공연

주말 첫 공연이 시작되기 20분 전인 오전 11시 40분이 되자 철문이 열렸고, 해녀 복장을 한 직원들이 환한 미소로 관객을 맞았다. 한눈에 담을 수 있을 정도의 공간. 한쪽 벽에 해녀들이 물질할 때 사용하는 테왁과 채취한 해산물을 담는 망사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 현무암 돌과 나뭇가지들로 해녀들이 물질하다 나와 쉬는 불턱도 만들어 놓았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시멘트 바닥과 회색 벽 등 그 옛날의 분위기를 바꾸지 않은 듯 했으나 테왁, 망사리 등 물질 도구로 장식해 해녀들의 삶을 그대로 옮긴 듯한 느낌이었다.

12시 정각이 되자 시작된 ‘해녀이야기’ 공연. 스토리는 이렇다. 10대에 물질을 시작한 영희는 첫눈에 반한 남자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책임감 때문에 임신 중에도 물질을 쉬지 못하는 영희. 어느덧 성인이 된 딸의 결혼식 날 손님에게 대접할 뿔소라를 잡기 위해 바다로 들어갔다가 정신을 잃게 되지만, 다행히 친구 순덕이의 도움으로 살게 된다. 영희는 그렇게 또 세월을 보내며 노년의 해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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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내멍 죽고 사는 건 사람일이라. 살리는 건 바다 몫이고.”
“숨 있을 때 나와야 한다! 욕심내면 안 된다.”
“기운이 없으면 빌려서라도 들어가야지. 눈물을 파도에 씻으면 그만. 자식들 생각하멍 버티라.”

‘꿈’도 ‘숨’도 가져가는 바다지만 어쩔 수 없이 바다와 함께 살아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자식들을 키우며 살아가는 제주 해녀들. 젊은 배우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공연장에 울렸고, 공연에 몰입한 관객들은 눈물을 훔치며 고달픈 해녀의 이야기에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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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가 따온 해산물로 차린 밥상

해녀이야기 공연이 더욱 즐거운 이유는 제주 음식을 바로 맛볼 수 있어서다.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올리는 귀한 ‘상외떡’, 제주 해녀들의 경조사 때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던 ‘뿔소라꼬지’ 등 이야기에 맞는 제주 음식이 공연 중간중간 관객에게 전달됐다.

50여분 동안 진행된 해녀이야기.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공연이 끝났고, 출출해진 관객들을 위해 종달리 해녀가 직접 요리한 제주 밥상이 차려졌다. 군소, 뿔소라, 성게, 우뭇가사리, 톳 등 이름만으로도 낯선 제주 해산물. 조배기를 넣어 만든 ‘조배기미역국’을 비롯해 제주 은갈치로 만든 ‘갈치조림’, 신선한 뿔소라와 해녀의 특제 간장으로 맛을 낸 ‘뿔소라장’, 우뭇가사리를 묵으로 만들어 무친 ‘우뭇가사리무침’ 등 어느 하나 제주 해녀의 숨이 담기지 않은 음식이 없었다. 다른 곳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제주만의, 그것도 해녀들이 직접 물질을 해서 잡은 귀한 밥상인 것이다.

그저 공간이 바뀐 카멜레존을 촬영하기 위해 해녀의 부엌을 찾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오래도록 기억하고 또 찾고 싶은 곳이 되었다. 그만큼 해녀이야기 공연과 해녀 밥상은 큰 감동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선물을 받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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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바다가 뭐냐고? 뭐긴 우리 부엌이지”

카멜레존 10

해녀의 부엌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해맞이해안로 2265

‘해녀의 부엌’은 목요일과 금요일에 1시간 40분 동안 진행되는 ‘NEW 부엌이야기’와 토·일·월요일에 2시간 30분 동안 진행하는 ‘해녀이야기’로 나뉜다. 점심과 저녁, 하루 두 번 진행하고 인터넷 예악만 받으니 사전 예약은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