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특별자치도 고창

더울수록 활 짝!
여름꽃이 피었습니다

흐드러지게 핀 꽃무리가 여름을 지나는 통로를 환하게 밝힌다. 생명의 땅 고창에선 철마다 다채로운 꽃이 차례로 망울을 틔운다. 여름은 라벤더의 계절이다. 한껏 달궈진 흙내음 속에 그 어떤 꽃보다 격렬한 생명력을 뽐내는 라벤더의 한철을 만났다.

세상에, 여행

글. 윤진아 사진. 박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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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한정판 ‘꽃멍’ 망중한

온통 보랏빛이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들판에서 미풍을 따라 일렁이는 라벤더 꽃무리가 섬세한 농담을 그리며 보랏빛 바다를 이룬다. 지금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여름 시즌 한정판 풍경이다. 다정한 연인, 가족들이 꽃밭에 파묻혀 달달한 인증사진을 남기는 모습도 정답다. 계절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으니, 지금 바로 여기에서 행복하자는 다짐 같다.
고창군 공음면에 있는 청농원은 계절별로 아름다운 꽃 군락을 볼 수 있는 컬러테라피 성지다. 1만 9,835㎡(6,000평)에 걸쳐 거대한 라벤더 정원을 조성했는데, 찾는 이들이 늘면서 올해 2,000여 평이나 더 넓게 라벤더를 심었다. 한층 광활해진 보랏빛 물결은 한국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장관을 내어준다. 색채의 향연은 여름부터 짙어진다. 5월 말부터 연보랏빛 물이 들기 시작하다 6월 중순 무렵 수만 송이의 라벤더가 앞다퉈 진보라 물감을 터트린다. 여름을 환하게 밝히는 건 라벤더만이 아니다. 1,400여 평에 걸쳐 조성된 수국정원도 연달아 형형색색의 꽃들을 피워내고, 5,000여 평에 걸친 핑크뮬리 정원은 가을이면 출렁이는 핑크빛 물결로 장관을 이룬다.

청농원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공음면 청천길 41-27

농원 안에 있는 술암제(述庵齊)는 10명까지 숙박할 수 있는 한옥 숙소다. 방은 물론 광·대청·다락·아궁이 등을 원래의 모습으로 유지해, 아늑한 자연 속 고택에서 하룻밤 묵기 좋다. 한갓진 툇마루에 걸터앉아 꽃과 함께 청아한 풍경소리를 음미하는 호사는 덤이다.
지금은 천상의 화원이지만, 이 땅의 역사를 알면 절로 숙연해진다. 청농원은 1894년 전봉준과 함께 동학농민운동을 최초로 일으킨 배환정의 후손들이 가꾼 농장이다. 청농원 주변에 많이 남아 있는 대나무 숲은 동학농민군의 무기로 쓰였던 역사의 흔적이다. 고창은 지역의 시위가 전국적인 규모로 확장되는 중심이었으며, 그 개혁투쟁의 과정을 남긴 동학기록물은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모든 날이 눈부셨다

한눈에 담을 수 없는 너른 들판이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준다. 무려 33만 평의 탁 트인 ‘보리나라 학원농장’은 가장 아름답고 넓은 보리밭으로 꼽힌다. 봄에는 청보리, 여름엔 해바라기가 들판을 가득 메운다. 푸르렀던 밭에 보리 이삭이 익어가기 시작하면 황금 들녘이 펼쳐지고, 가을엔 마치 구름이 내려앉은 듯 새하얀 세상으로 변한다. 사이사이 들녘을 수놓은 이름 모를 야생화도 길섶마다 피어 있다. 청보리를 내보낸 밭에선 곧 메밀이 휴지기의 단단한 땅을 뚫고 나와 강인한 생명력을 증명할 터이다.
‘학원농장’이라는 이름은 ‘학의 들’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구릉이 사방팔방으로 이어져 지평선을 그리는데, 약간의 경사가 있어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밭이 하늘에 닿아있는 듯한 모습이다. 구릉이 완만하게 흘러내린 지점에 낡은 움막 하나가 홀연히 서 있다.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 도깨비가 문을 열 때마다 수시로 드나들던 바로 그곳이다. 도깨비 신부와의 첫 키스가 이뤄졌던 장소이기도 하다. 쓰러질 듯 서 있는 움막과 신비로운 느낌의 나무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너와 함께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아서.” 드라마 속 명대사가 절로 떠오르는 풍경이다.

보리나라 학원농장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공음면 학원농장길 154

황톳길 산책로를 따라 구릉 건너편에 서면 아담한 원두막을 만난다. 바람에 실려 온 쌉싸름한 풀냄새, 바람이 밭과 고랑에 부딪히며 내는 소리를 만끽할 ‘밭멍’ 스폿이다.

찬란하게 피어나는 생명의 땅

밭을 나와도 여행할 장소가 차고 넘친다. 고창은 군 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 보존지역으로 지정된 생명의 땅이다. 자연과 생태, 인간과 문화가 그만큼 건강하게 어우러진다는 얘기다. 세계자연유산·세계문화유산을 비롯해 ‘유네스코’ 간판을 단 보물을 7개나 품고 있어, 유산만 쫓아다녀도 하루가 부족하다. 천년고찰 선운사, 운곡 람사르습지, 고인돌 유적지, 고창 갯벌 등등 고창 구석구석에 살아 숨쉬는 모든 생명이 여행의 매 순간 전율을 보탠다. 걷다가 쉬다가 시간과 자연이 빚은 거대한 예술작품을 만나거든, 그 눈부신 아름다움에 맘껏 탄복하면 그만이다.

진미면막국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수성로 62

감칠맛 폭발! 메밀 근본 맛집
고창에 왔다면 이 지역의 주 농작물도 맛봐야 한다. 고창은 기차역이 없기 때문에 KTX 등 기차를 타려면 정읍역을 이용하자. 정읍역에서 2km 거리에 있는 진미면막국수는 메밀 맛집이다. 주인장이 직접 반죽하는데, 주문과 동시에 주방에서 메밀을 치대고 물기를 터는 소리가 들린다. 해물과 채소가 듬뿍 올라간 메밀전은 양에 한 번 놀라고 맛에 한 번 더 놀랄 것이다. 간이 잘 밴 면은 씹을수록 메밀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따뜻하고 바삭한 전과 시원하고 쫄깃한 면으로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더위가 싹 달아난다. 메밀전 8,500원, 막국수 9,000원, 요즘 물가에 10,000원이 안 넘는 착한 가격도 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