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하루 끝, 맛있는 음식 한입이 행복을 불러온다. 그 소소한 행복을 가득 채워주러 김진석 주임이 도시락 제작·배달에 나섰다. 뚝딱 만들었는데 맛이 예사롭지 않다.
세상에, 맛남
글. 윤진아 사진. 안지섭 촬영협조. 푸드란쿠킹클래스
자취하면서 요리를 해 먹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변변치 않은 끼니를 나눌 때마다 늘 ‘엄지 척!’ 해줬던 김영주 주임을 위해, 김진석 주임이 앞치마를 동여맸다. 오늘 배울 요리는 영양만점 오삼불고기와 청경채
초밥, 노릇노릇 삼색전이다. “평소 요리 영상도 즐겨 보고, 레시피를 검색해 만들어본 요리도 20여 가지는 되는 것 같아요. 가끔 ‘이 맛이 맞나?’ 싶을 때도 있지만, 한 번 해본 요리는 썩 그럴듯하게 만드는
편입니다.”
김진석 주임은 ‘자취요리 메뉴 업데이트’를 목표로 잡았다. 자신 없던 칼질도 잘 배워 기본기를 늘릴 작정이다. “한 번쯤은 근사한 요리를 대접하고 싶었어요. 발전소 운전에 중요한 보직을 맡은 형에게 응원을
전하고, 부서 이동을 앞둔 저도 형의 기 좀 받으려고요.”
둘의 인연은 고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 만남은 동아리 신입생 환영회였다. 한 학년 선배이자 풍물반 전입 동기였던 김영주 주임과 여러 활동을 함께했다고. 학교 축제 땐 같이 다코야키를 만들어 팔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친해진 건 기숙사에서 같은 방 멘토·멘티로 만나면서다. 학업·진로 등등 각종 고민을 나눴던 형은 취업한 뒤에도 종종 찾아와 밥을 사주며 후배를 응원했고, 김진석 주임은 목표했던 중부발전에 입사할 수
있었다. “어디로 튈지 몰랐던 10대의 저를 잘 붙들어주고, 전환점마다 이정표가 돼준 형이에요. 보령발전본부 제2발전소에 전입해 일에 전념하던 어느 날, 형이 우리 회사로 이직을 준비한다는 연락을 받았죠. 제
숙소에서 면접 준비를 같이했고, 중부가족으로 새 인연이 이어졌습니다.”
‘알던 맛’의 풍미를 확 끌어올릴 요리의 포인트는 양념장을 나중에 넣는 것이다. 재료의 식감이 살아나고 감칠맛도 더해지는 마법에 김진석 주임의 입이 떡 벌어졌다. 오징어 몸통에 칼집을 내고, 밑간하고, 채소를 볶는
손길이 점차 노련해진다. 곧 이 역작을 받아들 형의 반응을 상상하니 자꾸 웃음이 난다. 음식엔 추억을 소환하는 힘이 있다. “둘이 합심해 닭갈비, 미역국, 달걀프라이까지 한 끼에 무려 세 가지 요리를 만든 적이
있어요. 서로 ‘내가 만든 달걀노른자 모양이 더 예쁘다’, ‘내가 만든 닭갈비가 있어서 달걀프라이가 빛이 나는 거다’ 자화자찬하던 기억이 나네요.”
같은 고등학교, 한국중부발전, 보령발전본부 제2발전소 발전운영2실 근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둘은 거의 같은 삶의 행로를 지나왔다. 새롭게 이어진 인연의 끈도 힘차게 맞잡았다. 김진석 주임의 군 복무 후 사택을 같이
배정받아 한집에서 살게 된 것이다. “회사에서 설비적 문제나 이슈가 생긴 날이면, 당시 서로의 상황이 어땠는지 대화하며 회포를 풀었어요. 형은 발전소 운전을 담당하는 제어실에서 근무했고, 저는 설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원인을 조사하고 방지대책을 세우는 부서였거든요. 이해가 안 가는 일이 생길 때마다 서로에게 도움을 구했죠.”
동고동락하는 2년여간 기억에 남는 일은 셀 수 없이 많다. 매일 같이 밥 먹는 사이다 보니, 김진석 주임이 코로나19 확진 통보를 받았을 땐 김영주 주임도 자동으로 교대근무에서 이탈하게 됐고, 눈물 젖은 격리생활도 함께했단다. “2022년 제2발전소에 불이 났을 때도 잊을 수 없어요. 정말 많은 분이 고생해서 거의 100일의 기적을 만든 사건이었고, 이제는 웃으며 회상할 수 있어도 당시엔 정말 바쁘고 힘들었죠. 사택에 귀가해 ‘너무 힘들어서 아무것도 못 하겠어요’라고 하니, 형이 ‘이럴 땐 맛있는 거 먹어야 한다’며 무려 참치 세트를 시켜주더라고요. 다 먹고 나서는 운동하러 가자고 잡아끌어서 무거운 몸을 일으켜 운동까지 했어요. 그렇게 억지로라도 밖에 나가 땀 흘리고 오니 오히려 컨디션이 좋아졌죠.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도 운동하며 건강을 관리하고 있어요.”
추억이라는 양념이 덧대어져 어느덧 테이블 위는 먹음직스러운 음식으로 가득하다. 꽉 찬 행복을 감싸안고 형에게로 향하는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가볍다.
“이거 나 주려고 만든 거 맞아?” 곱디고운 보자기에 감싼 알록달록 도시락에 김영주 주임이 눈을 떼지 못한다. 낯간지러운 말보다는 무심한 듯 뒤에서 챙겨주는 서로의 스타일을 고려하면, 실로 고난도 이벤트임은 분명하다. 둘이 같이 먹는 집밥은 정말 오랜만이다. “밖에선 종종 만나 사 먹어요. 같이 축구한 뒤 치킨도 시켜 먹고, 얼마 전엔 제철 방어에 소주 한잔 기울이며 낭만을 즐겼죠.”
‘초밥’ 하면 생선만 떠올랐다는 김영주 주임은 “청경채가 이렇게 초밥에 잘 어울릴 줄 몰랐다”며 잇단 ‘엄지 척’으로 동생을 뿌듯하게 했다. 도시락 구석구석 채워 넣은 진심을 형도 모를 리 없다. “고등학교 땐 장난도 많이 치고 잘 까불던 진석이가 군대 갔다 오더니 부쩍 의젓해졌더라고요. 어른이 됐달까요. 일 열심히 잘하고 동료들에게서 좋은 평가 받는 진석이가 늘 자랑스러워요. 오늘 또 하나의 추억이 쌓였으니, 평생의 안줏거리가 하나 늘었네요.”
숱한 희로애락을 함께해온 지난 시간을 뒤로하고, 든든한 ‘밥심’으로 더 높이 뛸 2025년! 지치고 힘들 때, 든든한 집밥을 먹고 싶을 때, 언제고 또 뭉치자는 말에 힘이 실린다. 앞으로도 함께여서 더 행복할 두 남자의 ‘평생 미식회’를 응원한다.
1. 대파와 고추는 어슷하게 썰고 양파는 채 썬다.
2. 오징어 껍질을 벗기고, 몸통 안쪽에 칼집을 넣어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3. 양파·오징어·돼지고기 순으로 볶다가 양념장을 넣고 볶는다.
4. 채소를 마저 볶은 다음, 참기름을 두르고 통깨 톡톡 뿌리면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