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사치

서울 강남에 거주하는 40대 A씨는 더 이상 로고가 도드라진 의상이나 가방을 입거나 들지 않는다. 명품이지만 로고가 보이지 않고, 색상, 패턴, 디자인 등도 유난스럽지 않은 브랜드를 즐겨 찾는다. ‘콰이어트 럭셔리(Quiet Luxury)’가 강력한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유행의 중심

글. 편집실

드러내지 않는 고급

한때는 브랜드마다 로고가 전면에 나오는 디자인이 인기였다.
큰 로고와 반짝이는 액세서리, 자극적인 컬러의 옷 등 ‘하이엔드 룩’이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브랜드 로고가 보이지 않고, 과하지 않는 스타일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트렌드를 ‘콰이어트 럭셔리’라고 한다. ‘콰이어트 럭셔리’는 말 그대로 ‘조용한 사치’, ‘절제된 고급스러움’을 뜻한다. 겉으로는 단순하고 소박해 보이지만, 정교한 재단, 고급 원단, 섬세한 마감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디테일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낸다.
겉으로 브랜드를 외치는 대신, 브랜드의 ‘품질과 철학’으로 소비자와 교감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어떤 배우가 로로피아나, 더로우, 브루넬로 쿠치넬리(로고가 보이지 않고, 절제된 매력이 있는 상품을 주로 판매하는 명품 브랜드) 등을 착용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누군가는 ‘명품 맞나?’라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분명 알아볼 것이다. 로고가 보이지 않더라도 고급스러운 소재와 절제된 디자인의 명품이라는 것을.
이것이 바로 콰이어트 럭셔리가 지향하는 바다.

ⓒ브루넬로 쿠치넬리
ⓒ로로피아나

국내외 패션 브랜드는 지금 ‘콰이어트 럭셔리 앓이 중!’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는 이 흐름을 주목하고 있다. 로로피아나는 최고급 원단을 사용해 촉감으로 가치를 입증했다. 더로우는 조용한 럭셔리의 대명사로 불리는 메리케이트 올슨, 애슐리 올슨 자매가 만든 브랜드로, 디자인은 거의 무채색이지만 전 세계 고객층을 사로잡았다. 에르메스도 이미 오래전부터 로고보다 장인정신을 앞세워 콰이어트 럭셔리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국내 패션 브랜드에서도 콰이어트 럭셔리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미니멀한 스타일’과 ‘로고 리스’ 패션이 하나의 신분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지쎄는 30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만든 수제화를 제작하고, 타임과 마인은 로고 노출 없는 고급 울과 캐시미어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으며, 코스, 아더에러, 르917 등은 20~30대를 타깃으로 조용한 럭셔리 감성을 담아냈다.

ⓒ로로피아나
ⓒ에르메스

지속 가능한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집중하며, 겉보다는 내면의 만족을 추구하는 소비 트렌드, 콰이어트 럭셔리!
처음에는 ‘고급스러움을 조용히 소비한다’는 개념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의미 있는 소비, 뛰어난 품질, 윤리적 제작에 가치를 두는 지속 가능한 흐름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철학은 패션을 넘어 인테리어, 여행 등 라이프 스타일 전반으로 확장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