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힙한 싸전*거리 바이브 따라
신당동 낭만 순례 * 쌀과 그 밖의 곡식을 파는 가게

조선시대엔 무당이 모여 살고, 1960년대엔 쌀 창고로 이름을 떨쳤던 신당동이 최근 ‘힙당동’으로 떠올랐다. 단순히 힙하다는 말만으로는 이 동네에 흐르는 신묘한 기운을 다 설명하지 못한다. 쌀집 같은데 닭을 튀기고, 양곡창고 같은데 커피를 볶거나 유럽풍 소품을 파는 동네. 옛것과 새것이 절묘하게 얽히고설킨 이곳에서 사람들은 옛 ‘신당골’의 낭만을 찾고 있다.

세상에, 여행

글. 윤진아 사진. 정우철

전설의 떡볶이 타운은
어떻게 핫플이 됐을까?

신당동 여행의 시작점은 전통강호, 떡볶이 타운으로 잡길 권한다. 신당역에서 3분 정도 걸어가면 이 동네 터줏대감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박제된 간판이 보인다. 며느리도 모른다는 전설의 레시피로 3대째 승승장구 중인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는 ‘신당동=떡볶이’ 공식을 만든 가게다. 본래 떡볶이는 궁중에서 먹던 떡찜에서 유래됐는데, 마복림 할머니가 고추장 양념에 떡과 채소를 넣고 연탄불에 볶아 팔면서 서민음식이 됐다. 저렴한 가격과 매콤달콤 마성의 맛이 알려지며 떡볶이 골목이 형성됐고, DJ박스를 운영하는 가게들이 등장하며 1970~80년대 청춘들의 데이트 코스로 자리 잡았다.
‘신당동’ 하면 떠오르는 게 떡볶이뿐이었다면, 업데이트할 시간이다.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로 어디선가 고소한 냄새가 퍼져 나온다면 시장이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냄새의 진원지는 대를 이어 운영 중인 ‘풍년기름집’이다. 신선한 통깨를 볶아 저온압착 방식으로 짠 참기름과 들기름을 직접 시음해 보고 구매할 수 있다. 한때 남대문, 동대문 시장과 함께 서울 3대 시장이었던 서울중앙시장엔 미식가들이 인정하는 노포가 즐비하다. ‘산전’의 수제어묵은 원하는 맛을 골라 먹는 가게로, 생선살에 채소를 듬뿍 넣어 튀겨내는 모습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
골목 깊숙이 들어갈수록 색다른 공간이 나타난다. 신당동은 조선시대 궁 밖으로 망자를 나르던 광희문 인근에 무당들이 모여들면서 신당이 많은 동네(神堂洞)로 불렸다. 찢어진 천막과 촛대, 부적, 볏짚 등등 으스스한 외관만 보면 영락없는 점집 같지만, ‘주신당’은 술을 모시는 신당이라는 콘셉트로 꾸민 칵테일 바다. 우리 전통주와 식재료를 활용해 십이지신 이야기를 12가지 칵테일에 구현해 여행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홍대·망원동·가로수길이
조금 지겨운 이들에게

신당동에서 천장이 높은 멋진 공간이 보인다면, 과거 쌀자루를 높이 쌓던 양곡창고의 뼈대를 남기고 재단장했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1960년대만 해도 신당동엔 수백 개의 쌀가게가 모여 싸전거리를 형성했다. 싸전을 개조한 베이커리카페 ‘심세정’도 골목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매일 서울 전역으로 유통되는 쌀이 쌓였던 창고엔 모던한 테이블이 놓였고, 목재 트러스가 노출된 지붕은 색다른 공간감을 자랑하는 높은 천장이 됐다.
골목 틈틈이 무심하게 숨어있는 핫플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쌀집 사이에 뜬금없이 자리 잡은 ‘갤러리 멋’은 이 동네의 개성 강한 상점과 컬래버 전시를 열며 신당의 멋을 알리고 있다. ​프랑스 가정집을 통째로 옮겨놓은 듯한 소품숍 ‘세실앤세드릭’은 인플루언서들도 꼭 들렀다 가는 인증 사진 코스! 역시 높은 층고의 붉은 벽돌 건물인 ‘브릭레인 버거’ 앞에는 싸전거리 조형물이 있다. 현대그룹 창업주의 전직이 쌀가게 배달원이었다니, 수제버거로 배를 채우며 성공의 기운을 듬뿍 받고 가도 좋겠다.
오래된 노포 사이로 툭 불거져 나온 서정이 자꾸만 마음을 두드리는 동네. 어느 유명인의 말마따나 “홍대, 망원동, 가로수길이 조금 지겨운 이들에게” 신당동 낭만 순례를 권한다. 옛 청춘들이 누볐을 풍경 하나하나가 긴 여운을 남기니, 이곳에서라면 묻어두었던 저마다의 추억을 꺼내봐도 될 것 같다.

1960년대만 해도 신당동엔
수백 개의 쌀가게가 모여
싸전거리를 형성했다.

떡볶이 성지에서 ‘청춘의 맛’ 업데이트!

35기 ‘맛·잘·알’ 동기들이 떡볶이의 성지에 떴다. 이들은 4년 전 학교 근처에서 면접 스터디를 함께하며 합격의 기쁨을 나눴던 사이다. 고향 경상도에서 직장 충청도를 넘어 서울 한복판 먹코스 순례까지! 새 추억 업데이트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본사 기획전략처 경영평가부
황수정 주임

전설의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를 먹어봤는데요. 자극적인 떡볶이가 유행하는 시대에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어 좋았어요. 그래서인지 가게 안엔 아이들보다 어른 손님들이 많아 정겹더라고요. 카페에서도 처음 보는 특이한 메뉴가 많아 신기했는데, 필터커피 원두에서 상큼한 향이 나 더위를 싹 날려줬습니다.
소중한 동기들과 함께한 두근두근 서울 여행! 각자의 자리에서 바쁘게 지내다 보니 자주 만나기 어려웠는데, 오랜만에 뭉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거웠어요. 떡볶이는 최고였고, 여행 내내 사진도 많이 찍고 진솔한 대화 나누며 찐한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취업 스터디부터 함께한 우리, 30년 뒤 정년퇴임까지 오늘처럼 알콩달콩 함께하자!

보령발전본부 기술지원실 환경관리부
문정원 주임

본사 디지털혁신처 디지털플랫폼부
정예린 주임

첫 코스로 떡볶이를 선택한 건 신의 한 수였어요.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 명성이 자자한 소품숍에서 시그니처 핸드크림도 하나씩 득템! 작은 선물 같은 추억을 남겼습니다. 취향대로 어묵을 골라 한입씩 나눠 먹으며 별점도 매겨보고, 요즘 핫하다는 말차케이크를 함께 맛보는 재미도 쏠쏠했어요. 동기들과 함께여서 모든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