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이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변신하고, 송가인의 구성진 목소리가 부모님들의 마음을 홀린다. 트로트 경연 서바이벌 시청률이 40%에 육박하는가 하면, 트로트를 주제로 한 예능 프로그램과 공연도 부지기수로 늘어났다. ‘트로트의 재개발’이 따로 없다.
BTS(방탄소년단)와 함께 우리나라 가요계를 주름잡는 ‘핫트렌드’가 있다. 트로트가 그 주인공이다. 코로나19 사태를 흥겨운 ‘뽕짝 리듬’으로 달랜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송가인·임영웅·홍자 등 라이징 트로트 스타의 열혈팬을 자처하며 오르는 무대마다 따라다니는 이들도 많다.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는 유재석을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데뷔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그의 노래 <합정역 5번 출구>와 <사랑의 재개발>은 인기차트에 진입하며 아직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사실 트로트는 가장 오래된 대중가요 장르 중 하나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등장, 삶의 애환을 담은 멜로디와 노랫말로 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50년대 후반부터 물밀 듯이 유입된 미국 팝에 중심을 내주며 ‘성인가요’라는 얄궂은 별명이 붙었다. 장윤정의 대표곡 <어머나>의 대성공과 박현빈·홍진영 등 젊고 끼 많은 가수들의 활약으로 이따금 주목을 받았지만, ‘트로트는 중장년층의 음악’ 혹은 ‘분위기 띄울 때 부르는 노래’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했다.
이런 와중에 방영된 TV조선의 <미스트롯>은 트로트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아이돌 가수를 공개 선발할 때 활용된 서바이벌 경연 방식을 적극 차용했고, 얼굴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젊은 트로트 가수를 대거 출연시켰다. 이들은 각자의 사연을 바탕으로 트로트에 다양한 장르를 접목하며 새로운 모습을 연신 보여줬는데, 여기에 각자 좋아하는 가수에게 투표하는 방식이 더해지자 시청자들의 감정이입이 한층 깊어졌다.
입소문이 퍼지자 청년들도 프로그램과 가수들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미스트롯>은 최고 시청률 18.1%를 기록하며 성황리에 마무리됐고, 유재석의 트로트 가수 데뷔와 <미스트롯>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특히 <미스트롯>은 최고 시청률 35.7%를 기록, ‘트로트 전성시대’의 문을 활짝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중들의 관심과 선호도가 높아지자, 방송가에서는 트로트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제작하고 있다. 국내 유명 트로트 가수들이 해외에서 트로트 버스킹(Busking)을 펼치는 SBS 예능 프로그램 <트롯신이 떴다>는 10% 이상의 시청률을 올리며 수요일 예능 1위를 차지했다. <나는 가수다>의 포맷을 딴 <나는 트로트 가수다>와 <트로트퀸>이 전파를 탔고, 아이돌그룹이 주인공인 <주간 아이돌>에 조항조·김용임 등 중견가수들이 출연해 트로트의 매력을 알리기도 했다. 트로트 주크박스 뮤지컬 <트롯연가>가 막을 열었고, 트로트 음악 드라마 <절벽송>이 올 하반기 출격을 기다리고 있다. 송가인을 비롯한 신예 트로트 가수들도 예능·광고 등으로 활동 폭을 넓히고 있다.
트로트의 급격한 인기 상승은 아이돌 위주의 한국 음악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한편으로는 트로트의 인기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지에 대해 걱정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어머나>와 <사랑의 배터리>처럼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만한 히트곡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트로트가 자생력을 가지려면 대중들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는 좋은 곡이 있어야 하는데, 트로트는 여러 미디어에 많이 나오지만 새로운 히트곡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송가인이 노래를 맛깔나게 부른다는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지만, 막상 그의 대표곡을 물어보면 십중팔구 머뭇거린다. 거의 모든 무대에서 기성곡을 불렀기 때문.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로트는 당분간 대중의 관심과 응원을 꾸준히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람들은 트로트 특유의 정서와 그 안에 얽힌 가수들의 사연을 아끼고 좋아한다. 가수들과 방송 관계자들은 양질의 콘텐츠로 대중들의 사랑에 보답할 의무가 있다. 콘텐츠와 인기가 조화롭게 오가는 ‘성장의 선순환’이 잘 조성되길, 이를 바탕으로 트로트가 성인가요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주류 대중음악의 한 장르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