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거나 괜찮아요.” 점심 메뉴를 정할 때도,
퇴근 후 약속 장소를 고를 때도 자주 나오는 말이다.
그런데 정말 아무거나 괜찮은 걸까.
어쩌면 아무거나 괜찮은 게 아니라,
더 고를 힘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의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결정에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오늘 당신이 유난히 피곤했다면,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선택이 많았기 때문일 수 있다.
글 편집실
참고 <생각에 관한 생각>, <우유부단한 인생이 꼭 알아야 할 선택의 심리학>
우리는 흔히 몸을 많이 쓰거나 복잡한 문제를 풀 때만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소한 결정을 내리는 순간에도 뇌는 쉬지 않고 움직인다. 어떤 옷을 입을지, 어떤 답장을 보낼지, 무엇부터 처리할지. 작은 결정들이 하나둘 쌓이는 사이 판단에 쓰는 힘도 조금씩 줄어든다.
사회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의지력과 자기통제력이 무한하지 않다고 보았다. 선택과 판단을 반복할수록 마음의 힘이 소모되고, 결국 아무것도 고르고 싶지 않은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오전에는 가볍게 처리하던 업무가 오후가 되면 괜히 복잡해 보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평소라면 바로 답했을 메일을 몇 번씩 다시 읽게 되고, 회의 자료의 문장 하나를 고치는 데도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미 확인한 일을 다시 들여다보거나, 결정해야 할 일을 ‘내일 다시 보자’며 미루기도 한다. 이렇게 반복된 선택으로 판단력과 집중력이 떨어지는 상태를 심리학에서는 ‘결정피로’라고 부른다.
결정피로가 심해지면 사람은 보통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하나는 결정을 계속 미루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충동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둘 다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 어렵다.
만약 지금 결정피로의 상태라면 ‘선택을 잘하는 법’보다 ‘선택을 줄이는 법’에 집중해보자. 반복 업무는 체크리스트로 만들고, 자주 하는 일은 루틴으로 정해두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검은색 터틀넥과 청바지처럼 비슷한 옷차림을 고수한 것도 이와 연결해 해석되곤 한다. 매일 반복되는 사소한 선택을 줄이고, 중요한 결정에 집중하기 위한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많은 경영자와 운동선수들이 자신만의 루틴을 유지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하루의 에너지를 덜 중요한 선택에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서다.
하루에도 수십 번의 선택을 해야 하는 직장인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판단력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순간에 집중할 수 있도록 결정 에너지를 관리하는 힘이다. 오늘도 당신의 뇌는 누구보다 바빴다. 그러니 점심 메뉴 하나쯤은 “아무거나 괜찮아요”라고 말해도 괜찮다. 그것도 뇌를 위한 작은 배려일 테니까.
· 출근 후 가장 중요한 업무 1개부터 결정하기 · 반복 업무는 체크리스트로 만들어 고민 줄이기 · 점심 메뉴, 복장 등 사소한 선택은 루틴화하기 · 중요한 결정은 오전 시간에 처리하기 · 선택지가 많을 땐 3개 이하로 압축하기 · ‘최선’보다 ‘충분히 괜찮은 선택’을 인정하기 · 피곤할 때는 결정보다 휴식을 먼저 선택하기 · 결정을 내린 뒤에는 후회보다 실행에 집중하기 · 하루 중 잠시라도 ‘생각하지 않는 시간’ 만들기 · 하루를 마무리하며 ‘오늘 잘 결정한 것 하나’ 떠올려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