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순이는 어느 산골에서 살았고, 허생원이 거닐던 메밀꽃밭의 풍경은 어떠했을까.
책을 읽다 보면 작품 속 인물들이 살던 곳이 문득 궁금해질 때가 있다.
상상으로만 그리던 그곳이 작가의 고향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책장을 넘기다, 그 마을에 닿았다. 작가가 태어나 오래 바라본
풍경 위로 작품 속 장면들이 조금 더 선명해진다.
글 편집실
강원도 춘천 실레마을은 김유정이 나고 자란 곳이다. 그가 남긴 소설 30편 가운데 12편의 무대가 된 곳이 바로 이 마을이니, 실레마을은 김유정 문학의 단골 배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자락 아래로는 집과 밭이 이어지고, 흙길을 따라 걸으면 조용한 산골의 분위기가 천천히 스며든다. 김유정 소설 속 구수한 말투와 능청스러운 인물들도 이 마을의 흙길과 밭두렁에서 걸어 나온 듯 친근하다. 이웃끼리 툭툭 말을 주고받고, 좋아하는 마음마저 서툴게 표현할 것 같은 분위기. <동백꽃> 속마을과 잘 어울리는 이유다.
<동백꽃>의 점순이는 좋아하는 마음을 곱게 말하지 못한다. 대신 감자를 내밀고, 닭싸움을 걸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토라진다. 읽는 사람은 다 아는데 정작 ‘나’만 모르는 마음이라 더 웃기고 귀엽다. 실레마을을 걷다 보면 마을길 어디쯤에서 점순이가 “느 집엔 이거 없지?” 하고 툭 말을 걸어올 것만 같다.
충북 옥천은 정지용 시인의 고향이다. 옥천 구읍에는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이 있고, 생가 앞에는 작은 실개천과 <향수> 시비가 자리한다. 낮은 산과 오래된 골목, 마을 사이로 흐르는 물길…. 이 소박한 풍경은 <향수>의 배경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향수>에는 넓은 벌판과 실개천, 얼룩백이 황소, 짚베개를 베고 쉬는 아버지, 이삭을 줍는 가족의 모습이 차례로 등장한다. 극적인 사건은 없다. 대신 고향의 자연과 가족의 일상이 한 장면씩 쌓이며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는다. 정지용 생가 앞 실개천과 구읍의 낮은 산, 오래된 골목은 시인이 마음에 담아둔 고향의 실제 배경으로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강원도 평창 봉평은 이효석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자,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으로 잘 알려진 고장이다. 작품 속 허생원은 동이, 조선달과 함께 봉평장을 떠나 대화장으로 향한다. 장이 서면 사람들이 모이고, 장이 끝나면 장돌뱅이들은 다음 장을 찾아 떠난다. 봉평장은 그렇게 만남과 이별이 오가던 자리인 것이다. 달빛 아래 하얗게 핀 메밀꽃밭은 그 길에서 만나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 그곳에서 오래 묻어두었던 기억과 뜻밖의 인연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한층 아련해진다. <메밀꽃 필 무렵>은 장터와 밤길을 따라, 떠도는 사람들의 삶을 서정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메밀꽃 필 무렵> 외에도 <산협>, <개살구>, <고사리> 등 여러 작품에는 봉평과 강원 산촌의 정서가 스며 있다.
경남 통영은 청마 유치환 시인이 태어나고 활동한 고장이다. 통영 정량동 망일봉 기슭에는 청마문학관과 복원된 생가가 자리하고, 언덕 아래로는 항구와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바다와 섬, 항구와 바람이 가까운 도시. 그래서일까. 통영을 보고 있으면 유치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자연의 이미지와 굳은 의지가 한층 또렷해진다.
<깃발>은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을 통해 닿을 수 없는 그리움과 이상을 그린 작품이다. 생활과 자연, 애련과 의지를 힘 있는 어조로 노래해 온 유치환의 시 세계가 이 작품 안에 선명하게 담겨 있다. 통영의 바닷바람과 항구 풍경을 함께 떠올리면, 바람을 맞으며 펄럭이는 깃발도 어렵지 않게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