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메뉴판 대신 책장을 펼쳐보는 시간이다. 따끈한 도시락부터 마음을 달래주는 커피 한 잔까지.
한 끼 식사를 고르듯 이야기를 고르면, 그 안에는 누군가의 하루와 인생이 담겨 있다. 이번 호에서는 ‘음식’을 통해
따뜻한 진심을 전하는 소설들을 한 상 가득 차렸다. 오늘 당신의 마음을 채워줄 메뉴는 무엇인가?
글 편집실
✧〈우동 한 그릇〉✧ “우동 한 그릇 주세요.” 섣달그믐날 밤, 일본의 우동집 북해정에 가난한 엄마와 두 아들이 들어온다. 형편이 어려워 우동 한 그릇만 주문한 모자에게 주인 내외는 티 나지 않게 면을 반 정도 더 얹어 내어준다. 이들에게 우동은 단순한 음식을 넘어 내일을 살아갈 힘이었다. 우동 한 그릇을 나눠 먹으며 서로를 다독이는 가족의 모습은 잔잔한 울림을 준다. 세월이 흘러 장성한 아들들이 다시 찾아와 ‘우동 세 그릇’을 주문하는 장면은, 누군가의 작은 배려가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보여준다.
✧〈불편한 편의점〉✧ 서울 청파동 골목의 작은 편의점 Always. 밤이 깊어지면 이곳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이들이 모여든다. 퇴근길 직장인부터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까지, 모두가 지친 표정으로 편의점 문을 연다. 이들을 맞이하는 건 노숙자 출신 알바생 독고. 덩치는 크고 말투는 어눌하지만, 그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며 상황에 맞는 도시락이나 삼각김밥을 권한다. 편의점 도시락은 바쁜 일상 속에서 급하게 때우는 끼니였지만, 독고의 손을 거치면 따뜻한 위로가 된다. 전자레인지에서 꺼낸 도시락처럼, 그의 무심한 듯한 배려가 이웃들의 일상에 온기를 더한다.
✧〈운수 좋은 날〉✧ 인력거꾼 김첨지에게 오늘은 운수가 좋은 날이다. 손님이 줄을 이어 큰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기분 좋게 일을 마친 그는 아픈 아내가 그토록 먹고 싶어 하던 설렁탕 한 그릇을 사 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집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아내의 싸늘한 시신. 행운이 찾아왔다고 생각한 순간에 비극적인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김첨지에게 설렁탕은 아내를 향한 마지막 마음이었고, 끝내 전하지 못한 진심으로 남았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치열했던 삶을 뒤로하고 동네에 작은 서점을 차린 영주. 서점에서 커피는 서점의 분위기를 완성하는 아주 특별한 존재다. 바리스타 민철이 정성껏 내리는 핸드드립 커피는 서점을 찾은 이들의 긴장을 풀어준다. 커피 한 잔이 내려지는 짧은 기다림의 시간 동안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속 고민을 꺼내 놓는다. 쌉싸름한 커피 향이 이곳을 찾은 이들에게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잠시 쉬어가도 좋다’고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파친코〉✧ 낯선 땅 일본으로 건너가 억척스럽게 살아남아야 했던 한 가족의 이야기다. 세월이 흐르며 말도, 옷차림도, 사는 모습도 조금씩 달라지지만 끝까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김치다. 주인공 선자는 시장에서 김치를 팔며 자식들을 키워낸다. 그녀에게 김치는 가족을 먹여 살리는 생계 수단이자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다. 이 맛은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으려 했던 노력과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한다.